저희 세대에게 아이작 뉴턴하면 생각나는 것은 사과입니다. 사과나무 밑에 앉아 있던 뉴턴이 잘 익은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제가 어릴 적 위인전 등에 쓰여 있었고, 그것이 사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고 알려진 만유인력의 존재 자체를 뉴턴이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뉴턴이 활동하던 당시의 학자들도 이 개념은 알고 있었지만 이 법칙을 수학적으로 정립을 하지 못한 것을 뉴턴이 갈릴레이 역학으로부터 발전시킨 뉴턴 역학(뉴턴의 운동법칙)과 미적분이라는 수학적 도구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만유인력을 수학적 표현으로 정립해 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뉴턴이 인류의 과학사에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긴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도 서구권에서는 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지성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런데 이에 비해 뉴턴의 저작물 중에 연금술과 관련된 저작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수가 적습니다. 뉴턴이 직접 쓴 연금술 관련 저작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가 들어와서였습니다. 뉴턴은 정통 과학자답지 않게 연금술에 무척 심취해 있었습니다. 만유인력의 근원을 찾아 현대 과학을 본 궤도에 올려놓은 그도 '현자의 돌'을 찾는 매력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뉴턴이 연금술에만 심취하지 않았다면 물리학은 보다 획기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뉴턴의 연구의 취향 때문이 아니라 뉴턴의 역학이 탄생한 17세기 후반에도 많은 과학자들은 연금술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연금술(鍊金術)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고대부터 유럽과 아랍권에서 유행한 것으로, 흔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학문이지만 마술과 그 경계가 약간 모호한 학문입니다. 뉴턴이 연금술을 접하게 된 것은 그가 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한 다음이었습니다. 위에서도 거론했지만 그 당시에는 화학과 연금술의 구분이 모호했었습니다(서구에서 화학이 발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연금술에 대한 연구 때문이었습니다). 뉴턴이 심취한 연금술 관련 책들은 오랜 시기에 걸쳐 연금술의 대가들이 만든 것으로, 뉴턴은 이를 토대로 연구하여 그 자신도 많은 연금술 저작을 남겼습니다.
뉴턴이 연금술에 심취해 있었다는 것은 그가 심각한 정신 장애를 겪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친구들이 자기를 음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비난했던 적도 있으며 잠을 자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훗날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뉴턴의 머리카락에서 발견했습니다. 그의 머리카락에서 다량의 수은을 찾아낸 것입니다. 수은에 중독이 되면 중독자는 식욕부진·두통·전신권태·손 떨림·불안 기타 정신이상 등이 주요 증상으로 일어납니다.
뉴턴은 1660년대부터 169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연금술에 홍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686년 <프린키피아(Principia)>를 쓴지 20년 후 그 책의 결론을 덧붙였는데 거기에서 뉴턴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의 범위는 광범위하다는 말을 적었고, 화학적 현상들은 이미 오래전에 실험 노트에 써 놓았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쓴 후에 집필한 연금술 관련 기록들이 그의 전체 연금술 기록 중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뉴턴이 물론 철광석으로 금을 만들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지만, 금이 '발효' 될 수만 있다면 다른 물질로 변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뉴턴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가 정말로 연금술을 믿은 게 아니라 그저 재미로 연금술을 갖고 놀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그 '놀이'라는 것에 뉴턴이 엄청난 정성과 노력을 소비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연금술 노트에는 백만 단어 이상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뉴턴이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 연금술 원고는 경매장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1936년 런던에서 열린 경매에서 리밍턴 경이 가보로 내려오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그중에는 바로 뉴턴이 손수 작성한 원고도 있었습니다. 뉴턴의 조카가 리밍턴 백작 집으로 시집간 후로 그 원고들이 대대로 백작 가에 전해져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때 그 원고를 낙찰받은 사람은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Keynes)였다. 케인즈는 자신이 구입한 원고를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그것은 수학이나 물리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바로 연금술에 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원고를 읽어본 케인즈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뉴턴이 진실로 열중했던 것은 연금술이었다. 그는 진실한 과학 시대를 연 사람이라기보다는 최후의 마술사였다.”
이 글은 이종호 저 <과학으로 파헤친 세기의 거짓말(2004)>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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