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불세출의 영웅, 전 세계를 정복할 뻔 한 남자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예 바로 나폴레옹입니다.
이렇게 정복자의 이미지로서 나폴레옹을 강조한 그림이 있죠. 누구나 한 번 이상은 보았을 그림은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입니다.
주황색 망토로 온몸을 휘감은 나폴레옹이 앞발을 치켜 든 백마에 아주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아주 편안하게 올라타고 있는 이 그림은 세계사 책은 물론이고 양주병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1800년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 북이탈리아로 쳐들어가 마랭고에서 승리한 것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 그림은 조작되었다고 합니다.
다비드는 본인이 제일 잘 하는 그림 그리기로 나폴레옹을 멋지게 미화시키는데 가희 천부적인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비드가 나폴레옹을 너무 존경하거나 요즘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처럼 팬심으로 한 일이 아니라 나폴레옹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비드도 나폴레옹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자신의 입지나 금전적인 보상을 원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알프스를 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다비드에게 주문했습니다, 또한 "앞발을 든 말 위에 앉은 평온한 모습으로 그려줬으면 좋겠다."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다비드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나폴레옹에게 모델을 서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화가의 '천재적 상상'에 맡긴다는 애매한 말로 대답을 하면서 다비드의 모델이 되어주지 않으며, 이런 말도 했다고 합니다 "초상화와 내가 닮고 안 닮고는 의미가 없다. 위대한 화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으면 된다." 절대적인 권력자인 나폴레옹이 모델을 거부하며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자 다비드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제자를 모델로 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러한 우역곡절 속에서 탄생한 그림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입니다. 초상화 속 나폴레옹은 주홍색 망토 속에 검은색 군복을 입고 용감한 모습으로 말에 올라타 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백마를 타고 알프스를 넘는 이 그림은 역사적 사실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림에서 앞발을 들었던 늠름한 백마는 실제로 알프스를 넘지 앟았습니다.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을 당시 그는 백마를 타지 않았고, 병사들과 함께 알프스를 넘지도 않았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알프스를 나폴레옹과 함께 넘은 동물은 험한 산길에 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당나귀가 말 대신 알프스를 넘어던 것입니다. 또한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병사들이 알프스를 다 넘어간 후에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당나귀를 타고 모양은 좀 빠지지만 편안히 알프스를 넘어갔습니다. 즉, 다비드의 그림처럼 험한 알프스를 힘겹게 넘어가는 프랑스 병사들을 앞장서서 독려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는 모습은 다비드와 동시대의 화가인 폴 들라로슈에 의해서도 그려졌는데 들라로슈가 그린 그림이 다비드의 그것보다 역사적 사실에 더 가깝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 그림은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인 1850년에 그린 것으로, 나폴레옹은 당나귀에 편안히 앉아 있으며 그 옆에는 한 늙은이가 당나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는 아주 평범한 한 장교의 모습을 그린 아주 평범한 장면의 그림입니다.
그럼 이렇게 권력과 야합(?)을 하고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린 다비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비드는 나폴레옹에게 중용되어 예술적이나 정치적으로 미술계 최대의 권력자로 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나폴레옹보다 스무 살이나 나이가 많았던 다비드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때 이미 40대 초반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자코뱅 당원으로 혁명에 투신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자코뱅의 지도자였던 로비스피에르가 실각을 해 처형을 당하자 다비드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이러한 다비드가 다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폴레옹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황제의 비호를 받는 화가"라는 영광 뒤에는 "권력에 아첨하는 배신자"라는 수치스러운 꼬리표가 언제나 따라다녔습니다. 다비드가 혁명 시에는 좌파인 자코뱅 당원으로 루이 16세의 사형에 앞장섰던 인물이 황제가 된 나폴레옹에게 아부를 하는 것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겠지요. 여하튼 다비드는 나폴레옹 시대의 종말과 더불어 입지가 좁아졌고 프랑스에서 쫓겨나 국외로 망명을 했습니다. 결국 1825년 다비드는 벨기에에서 77세로 사망을 하게 됩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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