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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의 창"에 대한 히틀러의 사랑

by 삼둥이 아빠 202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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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님들께서는 2005년에 개봉했던 영화 “콘스탄틴”을 기억하시나요?

영화에서 처음 사막한 곳에서 남루한 한 남자가 어느 창을 발견합니다. 창을 발견한 남자는 갑자기 자아를 잃고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행동을 하며 창을 가지고 어디론가 떠납니다. 영화의 말미에는 천사 가브리엘로 분한 틸다 스위튼이 형사 안젤라로 분한 레이텔 바이슨을 죽이려고 하는데요. 영화 내내 등장하는 이 창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사진출처 : 인터파크 영화

 

이 창은 우리가 “롱기누스의 창”이라고 부르는 창으로 카톨릭에서는 성스러운 물건으로 인정받는 물건입니다

 

1909년, 남루한 옷차림을 한 어딘가 아파보이고 창백한 남자가 빈에 있는 호프부르크 박물관의 합스부르크왕가 보물들 앞에 서 있습니다. 보석이 박힌 왕관들이 진열장 안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화려한 전시품이 다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남자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조그마하고 어찌 보면 초라한 물건이었습니다. 그 물건은 오래되어 윤기를 잃은 검은색 창의 날이었습니다. 이 병색이 짙은 남자는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였고, 그가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본 물건은 “롱기누스의 창”이었습니다.

 

사진출처 : 부산일보

 

이 창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그가 살아있는지 옆구리를 찌른 것으로 알려진 무기입니다. 히틀러는 당시 유럽에 최소한 3개의 "성스러운" 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바티칸에 보관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십자군들이 파리로 가져갔습니다. 또다른 하나는 폴란드의 크라코프 성당에서 보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창이 진품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거죠. 창의 원래 소유주였던 사람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당시 로마 백 부장(100명의 부하를 둔 지휘관)의 이름을 딴 롱기누스의 창은 그중에서도 가장 큰 주목을 끌었다. 그 이유는 예수를 못 박았던 못 하나가 창의 손잡이에 붙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창은 로마제국의 첫번째 기독교도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강력한 부적 노릇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8세기에 아랍인들을 프랑스에서 몰아낸 샤를 마르텔과 샤를마뉴 대제 그리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바바로사도 이 창을 호신용 부적으로 애용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창을 소유한 인물은 어떠한 전쟁에서 승리를 해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전설이 당시부터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야심은 컸지만 가난한 화가로 빈에서 궁핍하게 살았던 히틀러를 매혹시킨 것은 롱기누스의 창이 지닌 신비한 전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롱기누스의 창에 대한 히틀러의 집념을 밝힌 인물은 오스트리아학자인 발터 슈타인 박사였습니다. 1914년 이전부터 히틀러와 친교를 맺은 그는 히틀러의 성격 등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슈타인에 따르면 히틀러는 이 창의 초자연적인 위력을 맹신한 나머지 마법과 비학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학에 빠진 히틀러는 자신이 9세기에 악명이 높았던 시칠리아 독재자로 역시 이 창을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진 카푸아의 란둘프 2세의 환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슈타인은 히틀러가 독일의 권력을 잡은 것은 흑마술과 롱기누스의 창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믿었습니다.

롱기누스의 창에 대한 히틀러의 집념을 밝힌 인물은 오스트리아학자인 발터 슈타인 박사였습니다. 1914년 이전부터 히틀러와 친교를 맺은 그는 히틀러의 성격 등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슈타인에 따르면 히틀러는 이 창의 초자연적인 위력을 맹신한 나머지 마법과 비학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학에 빠진 히틀러는 자신이 9세기에 악명이 높았던 시칠리아 독재자로 역시 이 창을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진 카푸아의 란둘프 2세의 환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슈타인은 히틀러가 독일의 권력을 잡은 것은 흑마술과 롱기누스의 창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히틀러가 1938년 오스트리아를 제3제국에 합병했을 때 가장 먼저 취한 조치들 가운데 하나는 호프부르크박물관을 다시 찾아가 "운명의 창을 손에 넣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무장경호원이 호위하는 특별열차 편으로 이 창을 뉘른베르크로 운반하도록 조치하고, 그는 이 창을 나치의 사원으로 바뀐 어느 교회 안에 보관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사진출처 : 세계일보

 

하지만, 1945년 전세가 독일의 패망으로 기울어지고, 연합군이 뉘른베르크를 폭격하자 히틀러는 뉘른베르크 성의 지하 깊은 곳에 있는 금고실 안에 창을 은닉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당장의 전쟁상황이 불리하다하더라도 이 창만 있으면 자신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은 거죠.

 

1945년 4월 30일 완강한 독일군의 저항을 받으며 뉘른베르크로 진격한 미군부대는 이 금고실을 열고 창을 찾아내게 됩니다. 당시 베를린의 벙커에서 이미 고립되어 있던 히틀러는 창이 미군의 손에 넘어간 사실을 끈까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창을 미군에게 빼앗긴 지 불과 몇 시간 뒤에 히틀러는 권총으로 자살하고 맙니다.

 

사진출처 : 조선일보

 

악명 높은 과거를 지닌 고대 유물인 이 창은 오늘날 호프부르크박물관에 되돌아와 있습니다. 사실 1970~80년대에 태어난 남자들의 경우에는 영화 "콘스탄틴"에서 이 창이 언급되기 전에 먼저 알고 있었죠. 오기노 마코토의 만화의 "공작왕"에서도 이 창은 출연을 했었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안노 히데야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무기로 출연을 합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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