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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식

포크는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by 삼둥이 아빠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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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국가들은 식사 예절이나 품위에 꽤 민감한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 등의 미디어에서 격이 있는 식당에 가면 복장부터 식사를 하는 것까지 예절을 지키며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근대 문명이 막을 올린 시대에 도입된 격식인 테이블 매너도 유럽인이 세계에 전파한 것입니다. 언뜻 보면 매우 교양이 있어 보이지만, 서양인들의 식사 예절을 되짚어보면 생각 외로 그 역사가 매우 짧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Pixabay 로부터 입수된 -Rita-👩‍🍳 und 📷 mit ❤님의 이미지 입니다.

 

서양인들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식사는 손으로 직접 하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우리가 교과서 등에서 흔히 봐 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중 하나인 "최후의 만찬"을 보면 눈치를 챌 수 있듯이, 음식이 담긴 커다란 접시나 개인 접시는 놓여 있지만 포크나 스품은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으로 먹는 식습관은 예의와 매너가 갖춰지기 시작하는 18세기까지 그대로 이어져 왔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때까지 교육에 엄격한 부유층은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제외한 세 계의 손가락으로 음식을 직접 집어 먹는 것이 품위 있는 식사 방법이고, 두 손을 사용해 음식을 먹는 것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 거 하층민들이 하는 천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사진출처 : 부산일보

 

 

그 예로 1530년대에 유럽에서 나온 매너에 관한 서적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자리에서는 반드시 세 개의 손가락만 사용해 음식을 먹어야 하며 다석 개의 손가락을 모두 사용해서는 안 된다. 손가락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보면 상류계급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당시 서양인들은 스프 등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때 약 2만 년 전에 서아시아에서 발명되어 전파된 스푼을 그리스 시대부터 사용했는데 이 외의 식기를 사용하여 식사를 하는 모습을 매우 기이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 예로 16세기 후반에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음식을 손으로 먹는데 일본인은 어린 시절부터 두 개의 길다란 막대를 이용해 식사한다. 우리는 식사를 전후해 반드시 손을 씻지만 일본인은 음식에 손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손을 씻지 않는다."

 

Pixabay 로부터 입수된 Julita님의 이미지 입니다.

 

나이프는 꽤 이른 단계에서부터 애용됐지만 어디까지나 고기를 자르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고, 식기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그것도 모든 테이블에 나이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큰 덩어리 채로 요리한 고기를 개인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는 그것도 식사자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나 파티의 주관자가 잘라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식기 중에서 가장 역사가 짧은 것이 비잔틴 제국에서 고안했다고 알려 있는 포크입니다. 둘로 갈라진 소형 포크가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 지방에 도입된 것은 11세기로 접어든 이후인데, 당시에는 "작은 갈퀴"를 의미하는 "퓨스키나"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이것이 유럽에서의 최초의 포크라고 합니다.

 

Pixabay 로부터 입수된 Walter Bichler님의 이미지 입니다.

 

하지만, 이 포크에 대해서도 완고한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다방 면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고 합니다. 신이 내려주신 음식을 만질 수 있는 것은 신이 만들어주신 인간의 손뿐이며 묘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었죠. 그 때문에 어렵게 도입된 포크는 극히 일부의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다가 15세기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조금씩 인정받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포크를 사용하는 남자는 여성적인 경향이 강하다며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포크에 대한 반발과 편견은 뿌리가 매우 깊었기에 카 트린 드 메디시스에 의해 프랑스에 전해진 이후에도 사람들은 음식물을 손으로 집어 먹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Pixabay 로부터 입수된 WikiImages님의 이미지 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보석을 박아 장식품처럼 만든 포크가 단순한 장식품으로서 선반 위에 놓이는 하나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이외의 나라에서는 18세기에 이를 때까지 포크가 각광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과 함께 음식을 손으로 직접 먹는 것은 불결하다는 생각이 높아지면서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 직후에 포크가 급속도로 재인식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혁명으로 인해 지위를 박탈당한 귀족들이 어떻게든 자신들은 다르다는 평민과의 차별화를 도모하기 위해 손으로 먹는 것이 아닌 식사 예절의 일환으로서 도입한 사치스러운 행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조가 확산되자 포크는 신분이 높은 자들이 시용하는 도구의 상징으로 바뀌었고, 수식은 천한 행위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Pixabay 로부터 입수된 intographics님의 이미지 입니다.

 

처음에는 둘로 갈라진 포크가 주류를 이뤘지만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 세 개, 또는 네 개로 갈라진 포크가 개발되어 인기를 모으게 되었고, 마침내 요즘과 같이 나이프와 포크를 함게 사용하는 식사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포크의 창이 두 개인 것은 음식을 입까지 이동할 때 음식이 자주 떨어져서 인기를 얻지 못하였고, 창이 3개인 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삼지창을 사용하였기에 악마의 상징이라는 풍문이 떠돌아 곧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포크는 서양인들의 식탁에 당당하게 올라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절을 무지하게 차리는 것에 비하면 그 역사가 생각보다 많이 짧네요.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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