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생선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놓은 요리가 우리말로는 생선회(生鮮膾), 중국어로는 위피엔(魚片), 일본어로 사시미(刺身)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활어회로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일본에서는 선어회로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각 나라별 생선회의 이름을 한자로 적어 놓으니 무언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회를 표현한 말이 우리말이나 중국말로는 쉽게 이해가 갑니다. 문자 그대로 풀어쓰면 우리말의 생선회는 '살아 있는 싱싱한 생선의 살'이고, 중국어로는 '썰어놓은 생선의 조각'입니다. 하지만 일본어로는 이름만 듣고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회를 쳐놓은 생선을 놓고 '몸을 찌르다'라는 뜻의 '사시미'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작명입니다.
생선회가 일본어로 사시미가 된 유래로 2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일본어 어원사전을 보면 일본에서 생선회를 놓고 '사시미'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때는 14세기 초반의 무로마치 시대부터라고 합니다. 일본의 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는 무로마치 시대는 칼을 가진 사무라이들의 시대였으며, 동시에 신분이 아래인 사무라이들이 주인인 쇼군(장군)을 제거하고 지배자로 오르는 하극상이 난무하는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생선회를 놓고 '몸을 찌르다'라는 뜻의 사시미라는 이름이 붙은 데는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작용했다고 합니다. 생선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생선회를 표현하려면 '찌르다(刺)'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고 오히려 '자르다(切)'라는 단어가 어울립니다. 따라서 요리 방법을 놓고 음식 이름을 지을 경우에는 생선을 찌른다는 뜻의 '사시미(刺身)' 보다는 생선을 자른다는 의미로 '기리미(刺身)'라는 이름이 더 어울립니다.
그런데 무로마치시대에는 '자른다, 칼로 베다'라는 의미의 '기루비(切る)'가 '등에 칼을 꽂다', '배신하다'라는 의미의 '우라기루(裏切る)가 연상되는 단어이기 때문에 사무라이들 사이에서는 거의 금기시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사무라이의 세계에서 등을 돌린다는 것은 상대방을 믿는다는 뜻인데, 그 등을 칼로 베어버리는 것이므로 '배신하다 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베어 자르다'라는 '기루(切る)' 대신에 ‘찌르다, 꽃다'라는 의미의 '사수(刺す)'라는 단어를 사용해 ’ 사시미(刺身)'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시미'라는 이름에 얽힌 또 다른 일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생선의 지느러미나 아가미에 깃발을 꽂아 물고기의 종류를 구분한 것에서 유래됐다는 설입니다. 역시 일본의 무로마치시대 때 오사카성의 한 장군이 손님을 맞게 되었습니다. 쇼군은 멀리서 온 귀한 손님이라 요리사에게 특별히 맛있는 음식과 술을 준비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요리사는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좋은 기회라 보고 최선을 다해 진수성찬을 마련, 산해진미의 음식과 10종류가 넘는 생선회를 만들어 올렸다고 합니다.
맛에 반한 손님이 생선회를 먹으며 쇼군에게 무슨 생선으로 만든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생선 이름을 몰랐던 장군이 요리사를 불러 이름을 물었고, 요리사는 횟감에 사용된 생선의 이름과 부위를 하나하나 설명해 장군과 손님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후 부터 요리사는 주군인 쇼군이 어려운 생선 이름을 외우지 않고도 생선회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작은 깃발을 만들어 그 깃발에 물고기의 이름을 적어 생선회의 지느러미 혹은 아가미에 꽂아 상에 올렸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생선회를 '몸을 찌르다'라는 의미의 사시미로 부르게 됐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는 생선회 일본에서는 사시미로 부르는 이 요리는 우리나라 사람도 즐겨 먹는 음식이지만 일반적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생선회를 먹는 습관은 문헌상으로는 중국이 훨씬 오래됐다고 합니다. 한나라와 당나라 때 중국에서는 생선회가 일종의 트렌드 음식이었습니다. 다만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고 냉장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바닷물고기보다는 민물고기로 회를 쳐서 먹었다고 합니다. 당시 중국에서 즐겨 먹었던 횟감은 잉어였으며, 그중에서도 황하에서 잡히는 잉어가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리고 민물고기 중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어종은 농어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이 당시에도 최고의 횟감은 바닷물고기였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의 초대 황제 손권이 부하들과 생선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송어회의 맛이 최고지만 바다가 멀어서 평소에 먹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탄식했다고 합니다.
저는 낚시를 안 하기에 잘 모르지만 조사하다 보니 낚시를 하시는 분들 사이에는 계절에 따른 생선의 맛을 강조하는 이야기와 속담이 있어 같이 올려봅니다.
1월 : 도미(최고로 친다. 정월이 아니면 맛이 떨어진다.)
“5월 도미는 소가죽 씹는 것만 못하다.“
2월 : 가자미
"가자미 놀던 뻘 맛이 도미 맛보다 좋다."
3월 : 조기
"3월 거문도 조기는 7월의 칠산 장어와 안 바꾼다."
4월 : 삼치
"4월 삼치 한 배만 건지면 평안감사도 조카 같다."
5월 : 농어
"보리타작 농촌 총각 농어 잡은 섬 처녀만 못하다."
6월 : 숭어
"태산보다 높은 보리 고개에도 숭어 비늘 국 한 사발 마시면 정승보고 이놈 한다. “
7월 : 장어
"숙주에 고사리 넣은 장어 먹고 나면 다른 것은 맹물에 조약돌 삶은 국맛 난다.“
8월 : 꽃게
"8월 그믐게는 꿀맛이지만 보름 밀월게는 눈물 흘리며 먹는다. “
9월 : 전어
"전어 머릿속에 깨가 서말”
"전어 한 마리 햅쌀밥 열 그릇 죽인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다. “
10월 : 갈치
"10월 갈치는 돼지 삼겹살보다 낫고 은빛 비늘은 황소 값보다 높다"
11월과 12월은 찾지 못하겠네요 ^^;
이 글은 음식잡학사전(윤덕노, 북로드)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혹시 필요하신 광고 있으시면 구경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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