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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茶房)이 관공서였다고요?

by 삼둥이 아빠 202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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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커피나 차를 마시기 위해 스타벅스 등의 카페를 많이 찾습니다. 요즘에는 이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카공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커피나 차를 마시기 위해서 카페가 아닌 다방(茶房)을 더 많이 이용했습니다. 요즘 젊으신 분들은 모르실 수 있지만 다방은 커피, 홍차, 우유, 콜라 등의 음료를 판매하면서 사람을 만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업소를 말합니다. 아! 2023년에 OTT에서 방영한 드라마 “무빙”에서 류승용 씨가 분한 구룡포 장주원 씨의 아내로 나온 곽선영 배우님께서 구룡포와 결혼 전 일하셨던 업소가 다방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다방이라는 곳이 어떠한 업소인지 아실 수 있습니다.
 

학림다방 이충열 대표가 찍은 1988년 당시의 다방의 모습(사진출처:경향신문)

 
이 다방에서 파는 음료 가운데 가장 인기 있던 품목은 커피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에도 저희 세대나 윗 세대들은 '차를 마신다'고 하면 으레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알아듣습니다. 물론 달걀노른자를 동동 띄운 쌍화차도 인기였지만 커피에 비해서 비싸기도 했고 아무래도 나이가 많으신 어른들이나 마시는 음료 같아 저도 마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경양식집이 동네에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이곳에서도 커피 등 음료를 판매해서 제 세대도 다방보다는 이러한 경양식집이나 카페를 갔었다고 기억합니다.
 

1982년 오픈한 경양식집 "밤비노" (사진출처:고양신문)

 
그러나 옛날의 우리 조상들은 물론 커피가 아니라 차(茶)를 즐겨 마셨습니다. 우리나라에 차가 도입된 시기는 7세기 전반으로 추정됩니다. 근거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으로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승려가 경남 하동 근처에 차 씨앗을 심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경덕왕(재위 742~765) 때 승려 충담사(忠談師)가 다구(茶具)를 가지고 다니면서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남산의 미륵세존에게 차를 올린 공으로 경덕왕으로부터 왕사로 책봉되었다.”는 기록에서, 당시의 차가 쉽게 마실 수 있는 기호품이 아닌 제(祭)를 올리기 위한 고급 음식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려 왕실의 청자 다구(사진출처:강진일보)

 
고려시대에도 차는 술과 과자와 더불어 궁중의 중요한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연등회와 팔관회 등의 국가행사, 왕자와 왕비 등의 책봉에는 진다의식(進茶儀式)이 필수적 과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진다의식이란 길례(吉禮), 흉례(凶禮), 빈(賓), 예가예시(巤嘉禮時)에 전묘(殿廟)의 단(壇)에 차를 올리고 제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행사를 치르는 관청이 바로 차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던 '다방'이었습니다. 이 당시에 민간에는 차를 재배하고 제조하여 사찰에 공급하는 다촌까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개성을 방문한 뒤 기록한 “고려도경(髙麗圖經)”에는 궁중의 진다의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잔치를 할 때는 우선 정원에 차를 달여놓고, 연꽃 모양을 한 다관 주전자)에 차를 담아서 들고 손님 앞으로 천천히 가서 권한다."
 
조선시대 당시에 다방은 외국 사신을 접대하고, 과일·술·약 등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아보았습니다. 관청에서는 '다시(茶時)'라 하여 오늘날 '티타임'처럼 차 마시는 시간까지 있었습니다. 세종(재위 1418~1450) 때 다방의 관리를 선발하는 시험을 실시했는데, 글씨•계산·시·가례·육전의 과목 중 세 가지만 합격하면 관리로 채용되었다고 합니다.
 

다도하는 모습(사진출처:금강신문)

 
이처럼 유교를 표면에 내세워 건국한 조선이었지만 오랜 시간을 내려온 불교문화가 관공서에까지 존재했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성리학이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불교가 쇠퇴하여, 차문화는 승려와 일부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대신 술을 파는 주점이 발달했습니다.
 
사족이지만 한반도 최초의 근대식 다방은 구한말인 1902년 서울 정동에 있던 손탁호텔(Sontag Hotel)에 부설된 것이지만, 본격적인 다방 문화의 시초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경성 이곳저곳에 '끽다점'(喫茶店 - 다방을 가리키는 일본식 한자)을 차리면서부터입니다. 남대문역(서울역)에 있던 끽다점과 1923년 종로에 생겨났던 '후타미'(二見) 등이 있었습니다. 물론 조선인이 차린 다방도 아주 없진 않았는데, 배우 복혜숙이 운영했던 '비너스'와 시인 이상이 생계를 위해, 예술가들이 모일 만한 장소를 만들기 위해 차렸던 '제비다방'이 가장 유명했다고 합니다.
 

1909년 서울 남대문역 인근의 끽다점(다방) 내부 모습. 서울역사편찬원 제공(사진출처: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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