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모든 상식

게장은 조선 선비의 요주의 음식이었다고요?

by 삼둥이 아빠 2024. 2. 26.
728x90
반응형

우리나라에는 밥도둑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밥도둑 하면 떠오르는 음식 중 간장게장이 있습니다. 노르스름한 장이 담긴 게 등딱지에 밥을 비비면 다른 반찬 필요 없이 밥 한 공기 아니 두 공기는 뚝딱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기력이 떨어져 아무리 입맛이 없다 하더라도 짭조름한 간장게장의 냄새를 맡으면 밥생각이 납니다.

 

Pixabay 로부터 입수된 Kim Jinhyun님의 이미지 입니다.

 

게장이 얼마나 맛있는지 고려때 문인 이규보는 다음의 시에서 게장을 먹으면 굳이 신선이 되는 약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아이 불러 새 독을 열어보니

하얀 거품 솟으며 향기를 풍긴다

게는 금빛 액체, 술은 봉래주

어이하여 약 먹고 신선을 구하랴

이렇게 금빛처럼 노란색으로 잘 익은 게장을 보며 신선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게장을 먹으며 술 한잔 먹는 것이 바로 신선놀음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신선(사진출처:부산시보)

 

게장은 옛날부터 맛있는 음식의 하나로 꼽혔습니다. 기원전 7세기 이전인 주나라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바쳤다는 맛있는 음식으로 '청주의 해서(靑州之蟹胥)'를 꼽았습니다. 여기서 해서(蟹胥)는 게장이라는 뜻으로 한나라 때 사전인 “석명(釋名)”에서는 게를 잡아서 장을 담그면 뼈와 살이 녹아서 젓이 되는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이것으로 게장 중에서도 청주에서 잡힌 게로 담근 것이 가장 맛이 좋다는 것으로 중국에서도 생각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세상이 모두 아홉 개의 주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는데 청주도 그중 한 곳으로 그 위치는 지금의 중국 산둥성 태산의 동쪽 발해만으로 우리나라에서 보면 서해안이 됩니다. 그러니까 산둥성과 한반도 사이의 서해에서 잡히는 게로 담근 게장이 옛날부터 진미로 이름을 떨친 것입니다.

 

서해안에서 꽃게잡이를 하는 우리 어민(사진출처:팡팡뉴스)

 

게장의 맛있음은 임금도 피해갈 수 없었던 음식입니다. 간장게장으로 인해 조선의 조정이 뒤집혀 진적이 있으니, 영조 때의 일입니다. 영조의 선왕이자 형님인 경종이 게장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경종은 왕에 오른 지 4년째인 1724년 승하했는데 죽기 전날에도 게장으로 수라를 들었습니다.

 

경종의 사망원인은 “조선왕조실록”에 사망 원인이 나옵니다. “어제 임금이 게장과 생강을 드셨는데 밤새도록 가슴과 배가 뒤틀리는 것처럼 아팠다. 게와 생강을 함께 먹는 것은 의사가 꺼리는 일이다.” 이렇게 공식 기록에는 경종이 게장을 먹다가 체해 승하했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당시 세간에는 경종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독살설에서 피의자로 지목된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 동궁이면서 이복동생인 영조였습니다.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태어난 경종은 짧은 재임기간 동안 극심한 당쟁에 휘말렸습니다.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과 세제인 영인군, 즉 영조의 지지세력인 노론이 임금과 동궁을 사이에 두고 격렬한 당파 싸움을 벌인 것입니다.

 

경종의 승하(그림 정서용, 사진출처:프리미엄 조선-뉴스 속의 한국사)

 

임금의 자리에 오른 영조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듯이 당쟁을 없애려고 탕평책을 펴는데, 영조를 반대했던 소론 일부와 급진 남인 세력이 자신을 제거하려 들자 소론과 남인을 대대적으로 숙청을 합니다. 이때 숙청의 빌미가 된 것이 바로 게장이었습니다. 소론 인사인 이천해가 경종이 동궁전에서 보낸 게장 때문에 사망했다는 소문을 내자, 영조가 임금을 모함한다며 역적으로 몰아 이천해를 비롯한 소론 일파를 제거한 것입니다.

 

영조는 이후에도 계속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에 시달렸는데 왕이된 지 31년이 지난 후에도 소문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영조실록”에 관련 이야기가 나옵니다. "역적 신치윤의 게장에 관한 심문 기록을 보면 가슴이 섬뜩하고 뼈가 시려서 차마 들을 수가 없다. 황영(경종)에게 진어한 게장은 동궁전에서 보낸 것이 아니고, 주방에서 올린 것"이라고 했는데, 31년 전의 사건을 다시 거론할 정도로 시달린 것입니다.

 

사진출처 : 교보문고

 

한편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정조 때 이름을 떨친 이덕무는 선비들은 게장을 먹을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선비들이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적은 “사소절(士小節)”이라는 글에서 선비들에게  게 등딱지에 밥을 비벼 먹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보기 흉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는 다시 이야기하면 체면을 중시한 조선시대에도 선비들조차 체면에 개의치 않고 밥을 게 등딱지에 비벼 먹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그렇게 도도함을 유지했던 조선의 선비들도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