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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토반은 히틀러의 작품이 아니라고요?

by 삼둥이 아빠 2024.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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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독일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중에 “아우토반”이 있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속도제한이 없는 길. 이 길 덕분에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패망의 길에서 다시 한번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 아우토반을 우리는 히틀러가 만든 것으로 흔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근거로 정권을 잡으려고 활동하던 시절의 나치 선전물에는 히틀러가 1924년 란츠베르크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독일 전역을 교차로 없이 연결시키려는 비전을 세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독일의 아우토반 건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아우토반은 히틀러의 작품일까요?

 

아우토반(사진출처:나무위키)

 

독일 최초의 고속도로는 그 역사가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시작을 하였습니다. 1909년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를 중심으로 한 사업가들이 모여 AVUS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전용도로의 건설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이 계획하에 아우토반은 이미 1913년부터 건설되었으나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중단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1919년 AVUS 건설이 다시 재 개되어 2년 뒤인 1921년에 완공되었습니다.

 

AVUS라고 이름 붙여진 이 19킬로미터의 베를린 아우토반이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인 것입니다. 뒤이어 이탈리아에서도 1923년에 고속도로가 건설되었는데 밀라노에서 스위스 방향으로 놓인 아우토스트라다가 바로 그것입니다. 1926년에는 쾰른-뒤셀도르프 간의 아우토반이 계획되었고, 1932년에는 쾰른-본 구 간의 고속도로가 완공되었습니다. 그 1년 후인 1933년 히틀러가 수상이 되었을 때는 이미 독일 전역이 아우토반 망으로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히틀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많은 아우토반이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이었던 것입니다. 히틀러가 전쟁에서 져 엉망이 된 독일경제와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우토반을 구상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1924년에는 이미 베를린의 아우토반이 완성된 뒤였고, 히틀러의 재임 중 완공된 아우토반 역시 그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이미 진행되고 있던 일들이었습니다.

 

사진출처:나무위키

 

히틀러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고속도로는 진행되고 있었다

AVUS 건설 이후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고속도로가 건설된 시기는 나치 집권 이전인 1932년 9월이었습니다. 1924년 라인 지방정부가 계획했던 아헨과 쾰른 사이의 도로와 함께 본과 쾰른, 쾰른과 뒤셀도르프 사이의 자동차 도로 건설이 1929년과 1931년에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히틀러가 아우토반 건설에 대하여 1920년대 초반 자신의 생각으로 발전시키고 있었다는 주장도 신빙성이 없습니다.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하여 조사한 루드비히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신화가 토트(나치의 건설 전문가)를 비롯한 히틀러 추종자들의 조작에 의한 것임이 증명되었습니다. 더욱이 히틀러가 스스로 자동차 전용도로 건설에 대한 생각을 1924년 란츠베르크에 수감되었을 당시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는 거짓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시 집필된 <나의 투쟁>에 언급되었어야 하나, 자기애와 본인에 대한 자랑이 넘치는 이 책의 어디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나치의 다른 주요 선전 책자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찾을 수 없습니다.

 

고속도로 현장의 히틀러(사진출처:어린이조선)

 

아우토반을 처음 건설한 사람은 독일연방공화국(서독) 초대 총리를 지낸 콘라트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949~1963 총리 재임)입니다. 그는 쾰른 시장으로 있던 1920년대 말 쾰른-본 간 아우토반을 건설했는데 이것이 독일 최초의 자동차 전용도로인 셈입니다. 그 이후 히틀러가 군사목적으로 아우토반을 독일 전역에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당시 나치의 계획청 장관이었던 괴링은 전쟁 중에 “히틀러 총통이 아우토반을 건설한 덕분에 사단 병력을 24시간 내에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이동시킬 수 있었다.”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동차 브랜드 중 독일의 “폭스바겐”은 히틀러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 맞습니다.

 

Pixabay 로부터 입수된 Pexels님의 이미지 입니다.

 

1934년 어느 날 자동차 기술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히틀러에게 불려 갔습니다. 포르쉐가 자리에 앉자마자 히틀러는 메모지 한 장을 그에게 불쑥 내밀었는데, 거기엔 히틀러가 직접 적은 친필 글자가 촘촘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독일 국민차에 대한 조건이었습니다.

"1, 어른 2명, 어린이 3명 등 일가족이 탈 수 있는 차

 2, 연료 1리터로 14.5킬로미터 이상 달릴 수 있는 차

 3, 판매 가격이 1천 마르크 이하 되는 저렴한 자동차

 4, 정비가 쉽고 무게가 605킬로그램 이상 나가지 않는 작은 자동차

 5, 최고 시속 100킬로미터 정도를 달릴 수 있는 자동"

이렇게 적혀있는 메모지를 받아든 포르쉐는 2년 후 히틀러의 내용대로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그 자동차가 역사상 단일 모델로는 가장 많이 팔렸다는 '폭스바겐'입니다. 독일어로 '국민의(Volks)' '차(Wagen)'란 뜻의 폭스바겐은 2003년 7월 멕시코 공장에서 2천여만 대의 마지막 제품이 생산될 때까지 오랜 기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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