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소희, 박서준 씨가 주연을 한 OTT 드라마 “경성 크리처”가 화제입니다. 며칠 전에는 주연을 맡은 한소희가 일본 네티즌들에게 악플세례를 받았다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지금의 일본인들은 많은 수가 한국인들을 무시하거나 폄하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20세기 초 우리 땅에 들어왔던 일본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조선인들을 무시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본이 조선보다 먼저 서구문명을 받아들여서? 아니면 힘이 약한 나라의 백성이어서?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19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인을 생각하는 방향과는 완전히 그 길이 달랐습니다. 오늘은 근대 일본인들이 무슨 이유로 조선인을 무시했었는지 2회에 걸쳐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일본에서 존경받는 위인들 중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1985년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1901년 죽은 일본의 존경받는 계몽운동가이자 철학자, 언론인에 교육인이었습니다. 저서로는 “학문의 권유”, “서양사정”, “문명론의 개략” 등 많은 책을 지필 하며 일본인들의 정신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1984년에는 일본 전설 속에 등장하는 “쇼토쿠 태자”를 대신해서 1만 엔권의 인물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 이렇게 계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일본인들의 머릿속에 조선인은 개나 돼지보다도 못한 인물이라는 인식을 뿌리내리게 했을까요?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유키치는 무사로서의 출세길이 막히자 일본식 봉건제도에 불만을 갖게 되었고, 1860년 막부의 배에 심부름꾼으로 승선하여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배를 타고 다니며 유럽 여러 나라를 견학하게 된 유키치는 귀국 후 1866년에 자신의 견문을 알리고 개항을 주장하면서 병원, 은행, 우편, 보험, 징병제도 등 선진문화 전반을 소개한 "서양사정(西洋事情) " 을 저술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메이지 쿠데타 세력들은 서양과 같은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지, 새로운 일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었습니다. 이때에 이 책은 이런 어두움 속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지침서가 되었기 때문에 15만 부 이상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872년, 그는 ”학문의 권장“ 이라는 책 머리말의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는 말을 집어넣었는데 이 말은 당시 일본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어 70만 부나 팔렸습니다. 당시 일본 인구가 3,000만 명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읽었다는 것입니다. 이 머리말은 메이지 쿠데타의 명분이었던 신분폐지론에 정당성과 명분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유키치가 이야기하는 평등은 완전한 평등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평등은 일본과 일왕 아래에서의 제한된 평등론이었습니다. 그의 주장은 조작된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만세일계(万世一系)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만세일계란 일본 왕실의 혈통이 단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서양문명을 받아들이되 만세일계의 일왕이 존재하는 국가 그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유키치가 이야기하는 평등한 세상에 조선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존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평등은 일본인들에게만 적용 된다는 뜻입니다.
유키치는 "서양은 표면적으로는 사랑을 내세운 기독교 국가이지만 본질은 타국을 침략하려고 노리는 살인자"라고 비난하면서도 1885년 3월 <지지신보>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탈피하여 서양과 길을 같이 하자는 '탈아입구론”을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오늘날의 국제 관계를 도모함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이웃 나라의 개명을 기다려 더불어 아시아를 흥하게 할 여유가 없다. 오히려 그 대오에서 탈피하여 서양의 문명국들과 진퇴를 같이하여 저지 나(청나라)와 조선을 대하는 법도 이웃 나라라고 해서 특별히 사 이렇게 대우해 줄 것도 없고, 바로 서양인이 저들을 대하듯이 처분을 하면 될 뿐이다. 나쁜 친구를 사귀는 자는 더불어 오명을 피할 길이 없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아시아 동방의 나쁜 친구를 사절해야 한다. “
유키치의 이러한 주장이 있은 후부터 '러일전쟁' 이후 만화 등에 등장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당시 동양인과는 다르게 건장한 몸매의 서구적인 특징으로 묘사되기 시작했습니다. 훈도시와 토끼 이빨은 쑥 들어가고 존마게는 사라졌습니다. 찢어진 눈은 쌍꺼풀에 크게 그려졌고, 박박 밀어버린 개체 변발은 풍성한 머리숱으로 그려져, 서양인과 같은 면모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유키치는 한반도를 아무런 이유 없이 헐뜯으며 일본 국민들을 선동했습니다. 이는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약소국을 침략하는 게 유행했는데, 유키치는 일본도 서양의 전철을 밟아 나아가도 록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입니다. 곧 정한론뿐만 아니라 아시아 침략의 근거를 제공한 것이죠. 여기에서 '서양 사람들의 방식대로'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영국인들이 식민지 인도인들을 살해하면서 "원숭이로 착각하여 죽였다"라고 뻔뻔스럽게 변명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유키치는 이를 '최상의 문명국'으로 정의하면서, 또 이를 본받아 '점령지의 사람들을 동물과 같이 죽여도 상관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유키치는 1885년 ”일왕께서 직접 징벌 나가실 준비는 되었는가? “, ”조선만은 정리되어야 “, ”아직 만세를 부를 때가 아니다 “, ”조선의 형편을 다시 걱정할 필요가 있나? “, ”일본 병사들, 재조선 일본인들의 안부는 어떠한가? “ 등의 글을 통해 맹렬하게 정한론을 전개했습니다. 그 해 8월에는 ”조선 인민을 위하여 그 나라의 멸망을 축하한다 “, ”조선의 멸망은 조선의 피할 수 없는 대세다 “라는 두 편의 글을 통해 “인민의 생명도, 재산도 지켜주지 못하고, 독립국가의 자존심도 지켜주지 않는 그런 나라는 오히려 망해 버리는 게 인민을 구제하는 길이다"라고 악의적인 선동을 하였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에는 "조선 인민은 소와 말, 돼지, 개와 같다. 조선인의 완고 무식함은 남양의 미개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라고 말했으며 "서울에 주둔 중인 청 국병사들을 몰살하라"라고 침략을 선동했습니다.
워낙 얄팍한 지식으로 글을 쓰려다 보니 글이 길어지네요... 😢
오늘은 여기서 줄이고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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