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올기종기 모여 앉아 꽁당 보리밥
꿀보다도 더 맛 좋은 꽁당보리밥
꿀보다도 더 맛 좋은 꽁당보리밥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이 노래를 기억하시는 분 계실까요? 어린 시절 동네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 할 때 많이 부르던 노래였습니다. 일명 “혼분식의 노래”입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쌀이 부족한 국가였습니다. 그렇기에 쌀로 만들던 소주도 법으로 금지해 알코올 원액을 섞는 방식으로 만들게 하였고, 예전에는 집에서 잔치 등을 위하여 빚었던 술도 밀주라 하여 빚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학교 도시락 혼분식 과잉 단속-성적에 반영, 처벌까지 학부모 불러 각 서받기도, 일부 학교선 돈 걷어 빵 단체 구입" -《동아일보》 1976년 6월 12일 자
점심시간 학생들이 도시락 뚜껑을 열고 자리에 앉아 대기하고 있으면, 담임이 교실을 돌며 도시락을 검사를 했습니다. 일정 이상 보리가 섞여 있으면 통과, 그렇지 않으면 도시락을 압수당해 점심을 굶게 하였습니다. 이 장면은 혼분식 장려운동이 벌어지던 교실 풍경입니다.
혼분식 장려는 우리의 슬픈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땅에서는 전쟁이 터졌습니다, 50년대 한국은 미국의 경제원조를 받았는데 이때 미국의 잉여 농산물이 대량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앞잡이로 우리 국민들을 괴롭히던 친일매국노들이 대부분 그대로 그 자리를 차지하며 자신들의 배를 채웠으며, 저가의 미국 농산물이 도입되자, 농촌이 파괴되고 우리 민족의 주식인 쌀이 부족한 심각한 식량 부족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심각한 상황에서 쌀 폭동이 일어날 위험을 모면하려면 식생활 자체를 쌀 중심에서 원조 곡물인 밀 중심으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혼분식 장려운동인 것입니다.
"왜 밥을 달라고 하나. 빵을 먹으면 되지 않는가. 왜 고기를 먹지 않는가." 미군정청 관리가 해방 직후 이런 말을 하여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만큼, 쌀로 지은 밥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인에게 그냥 허기를 채우는 식품의 범위를 넘어서는 하나의 민족적 지표였습니다. 이러한 한국인들에게 식생활 변화는 민족문화의 변질로 여겨지는 중대 사안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벼농사 기반의 수도작 문화를 바탕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해방 후에도 친일파가 요직을 차지하면서 민족문화 자체를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풍조에서 수도작 문화 운운은 시대에 뒤떨어진 후진국적인 말이었습니다.
혼분식 장려는 70년대 경제성장과 관련하여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기업인들은 노동자의 저임금을 유지하려면 생계비를 줄여야 했고, 그러려면 값싼 외국산 농작물을 먹도록 해야 했습니다. 또한 이 기업인들에게 뒷 돈을 받던 정부의 요인들이나 공무원들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계속해서 뒷돈이 들어오니까요. 그러나 이 일은 심각한 빈부격차 속에서 엄청난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유신 시대는 무상급식이나 생활보조 같은 복지제도는 이야기만 해도 빨갱이로 몰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울 변두리 지역만 해도 점심을 싸 오지 못해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을 배회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임금 유지를 위한 혼분식 장려는 빈부격차를 더욱 두드러지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라도 강제 혼분식을 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각 학교에서 도시락을 검사해 잡곡밥이 아니면 먹지 못하게 하고 미국산 밀로 만든 빵으로 단체급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적극적 아니 강제적으로 시행하던 혼분식 장려 운동이 우습게도 1978년을 전후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도시락 검사도 없어지고 분식 강조도 잦아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혼분식 장려와 같은 이유였습니다. 쌀 생산량이 늘어 수요를 넘어서게 되고, 수입산 농산물 가격이 올라 외화 유출 요인이 된 것입니다. 심각한 무역적자와 쌀의 초과생산으로 다시 쌀밥 소비 장려로 정책을 전환한 것입니다. 그때 마침 하늘이 도운 것인지 아니면 사건을 만든 것인지 단체급식용 빵이 변질돼 식중독 사건이 일어난 것도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분식 장려가 뜸해지고 갑자기 쌀 소비 증대 운운하자 국민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정권은 혼분식 장려를 위해 쌀밥보다 빵이나 잡곡밥이 훨씬 영양가가 높다고, 그래서 특히 성장기 아이들은 혼분식을 해야 한다고 선전했는데 이제 와서 쌀도 영양가가 높다고 말이 바뀌었으니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 몇몇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를 성장시켜 놓아서 이제 흰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늘어놓기도 하였습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독재 정권들은 국민의 먹을거리를 통제하려고 애썼습니다. 자신들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검은 자금을 위해서 국민들에게 국수를 먹으라, 빵을 먹으라 하더니 다음에는 밥을 먹으라 하지를 않나, 전두환 정부 때는 식당에 밑반찬도 그냥 주지 말고 일일이 돈을 받고 팔라고 하면서 반찬으로는 김치 하나만 무료로 제공하고, 지금 일부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다른 모든 반찬을 따로따로 사 먹게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50년대부터 21세기까지 항상 정부의 먹거리 정책 배경에는 경제성장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싼 먹거리를 들여와 저임금을 유지하고 생산성을 높일까? 그 속에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은 항상 뒤로 밀려났다. 교과서에서는 건강을 위해 로컬푸드를 먹으라고 권하지만, 건국 이래 60년 동안 수입산 먹거리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고 권하는 정부와 외면하는 국민 간의 대립이 있었고, 약 20년 동안 조용하다 요즘에는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안전하다는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먹는 시늉도 하지 않는 메이져 언론에서도 관련 기사를 잠깐 내고 더 이상 내지 않는 상황이 또 왔네요.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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