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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가 두부의 신이라고요?

by 삼둥이 아빠 2023.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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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콩을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합니다. 실제로 대두에 포함된 단백질은 쇠고기보다 2배나 높으며, 칼로리는 약 3배, 칼슘은 무려 20배 나 더 많다고 합니다. 또한 인체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도 같은 양의 콩 이 쇠고기나 돼지고기보다 두 배나 많은 슈퍼식품입니다. 이런 콩의 뛰어난 효능에도 불구하고 콩을 쉽게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밥과 같이 하여 먹는 콩밥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의외로 꽤 있습니다. 더군다나 콩은 잘 조리하지 않으면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이 비린내 때문에 콩을 입에도 대기 싫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콩을 거부하시는 분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두부입니다.

 

Pixabay 로부터 입수된 ally j님의 이미지 입니다.

 

콩에 포함된 단백질 양은 약 40퍼센트 내외이고 이 40% 중 60퍼센트 정도가 인체에 흡수되는데, 두부에는 단백질이 90퍼센트 포함되어 있고 이것의 약 93퍼센트가 인체에 흡수됩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콩을 원료로 해서 만든 두부는 콩보다 효능이 훨씬 뛰어납니다. 그래서 육식을 하지 않고 채식을 하는 스님들이나 채식주의자들에게 두부는 고기 대신 먹는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요즘에는 콩으로 만든 콩고기도 나오더군요.

 

사진출처 : 두부

 

중국에서는 예부터 정진요리(精進料理)라고 해서 교리에 따라 고기를 먹을 수 없는 스님들이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음식으로 많은 두부요리들이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두부는 오래전부터 사찰 음식을 대표하는 것이고 승가에서 가장 좋아하는 세 가지 음식인 삼소(三笑)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슈퍼식품인 두부는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정확한 개발연도는 나오지 않지만 두부는 중국 한나라나 당나라 때 처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798년 정조 때 이영이 쓴 《재물보》에 전한의 회남왕 유안이 두부를 발명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한나라를 전후해서 등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두부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금세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는데, 두부와 관련된 유명한 인물로 “삼국지”의 영웅 관우가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관우는 두부와 두부 장사꾼들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다고 하네요.

 

Pixabay 로부터 입수된 huangjinge님의 이미지 입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나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는 소개되지 않지만, 관우에 얽힌 민담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관우는 원래 하늘에 살던 적제 (남방을 다스리는 신)였다. 그런 데 금기를 깨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다. 이 일로 옥황 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지상으로 쫓겨나 갓난아기가 되었다. 이 갓난아기를 보구사 주지승이 발견하고, 절에 들른 두부 장사 부부에게 맡아 기르게 했다. 이후 관우는 양부모를 도와 두부 장사를 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자기 약혼녀가 여웅이라는 음탕한 노인에게 납치를 당했노라며 도와달라고 했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여웅은 나이가 환갑을 넘었는데도 여색을 무척 탐하는 노인이었다. 그 수법이 참으로 치졸했는데, 자기 집 마당에 있는 우물만 남기고 마을의 모든 우물에 똥을 넣은 것이다. 자연히 사람들은 물을 마시려고 여웅의 집으로 몰려들었고, 여웅은 물을 길러 온 여인들 중에서 젊고 예쁜 처녀만 골라 능욕한 것이다. 거기에 친구의 약혼녀도 있었다. 이런 추악한 죄를 짓고도 여웅은 지역 유지인 데다 그 지역 태수의 친척이 어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는 친구의 말을 듣던 관우는 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여웅의 집으로 찾아가 담을 뛰어넘고는 친구의 약혼녀를 막 겁탈하려는 여웅에게 칼을 휘 둘러 죽인 후 약혼녀를 구해냈다. 하지만 졸지에 주인을 잃은 여웅 집의 하인들이 관청에 신고를 하는 바람에 관우는 살인범이 되고 말았다. 결국 생업인 두부 장사를 그만두고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떠돌았다. 그러다가 유비를 만나 의형제를 맺는다.”

 

물론 이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은 아니겠지요. 그렇더라도 이런 설화가 만들어진 배경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 관우를 두부 장사꾼들의 수호신이 되게 했을까요?

 

하이저우 관제묘(사진출처 : 나무위키)

 

관우의 고향인 산시성(山西省) 그중에서도 하이저우에는 소금기 많은 연못이 있어서 바다와 접하지 않고도 소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하이저우에서는 중국 내지를 오가며 소금을 팔던 소금 장사꾼들이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이 때문에 소금이 풍부한 산시성에서는 더 질 좋은 두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꽌시(關係), 우리 식으로 치면 인맥을 중요시하는 중국 사회에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영웅호걸 관우와 고향이 같다는 사실은 큰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산시성의 두부 장사꾼들이 자신들을 돋보이게 하려고 관우가 두부 장사를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지어 내지 않았을까요?. 중국인들은 소설 “삼국지연의”를 역사적 사실로 생각하고, 조조와 손권의 간계에 빠져 억울하게 죽은 관우의 죽음을 무척 애통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유비를 따라 천하를 누비며 수많은 전쟁을 치렀지만 한나라 부흥이라는 사명을 끝내 완수하지 못 한 억울함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관우를 신으로 받들어 사당이나 집에서 관우를 모시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 동아일보

 

중국에서 관우는 두부 장사 이외에도 돈벌이나 사업의 흥행, 소원 성취 등의 수호신이기도 합니다. 죽어서도 많이 바쁠듯 합니다. 살아있을 때는 장수로서는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목표달성에는 실패를 한 관우에게 중국인들은 아직도 많은 애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지방 군벌의 장수에 지나지 않던 그가 죽어서는 관성대제라 불리며 자신이 모시던 유비보다 더욱 존경을 받는 위치까지 올랐으니, 참으로 사람의 인생 역정이란 알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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