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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雜菜)로 장관이 된 사람이 있었다고요?

by 삼둥이 아빠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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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특별한 날 특별한 잔칫상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불고기, 부침개 등의 전, 여러 가지 음식이 있지만 오늘 이야기 하려고 하는 음식은 잡채입니다. 잡채는 잘 아시겠지만 당근, 양파, 고기, 목이버섯, 시금치 등 색상의 조화와 영양의 균형을 중요시하여 선정한 채소 등을 기름으로 볶은 뒤 삶은 당면을 간장양념으로 같이 볶는 요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참기름을 넣고 버무리고 달걀지단 등을 올려 완성합니다. 쫄깃한 당면 식감과 채소와 고기 그리고 양념의 조화로 자극적이지 않아 많은 사랑을 받는 대한민국 대표 국민 요리 중에 하나입니다. 돌잔치는 물론 생일잔치, 결혼식 피로연, 환갑잔치 때도 잡채가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Pixabay 로부터 입수된 JUNO KWON님의 이미지 입니다.

 

이렇게 잔칫날 먹는 음식인 만큼 잡채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임금님이 먹던 궁중 요리였으며, 믿기 어렵지만 잡채를 잘 만들어 판서 벼슬에 오른 이도 있었습니다.

 

조선의 제15대 국왕인 광해군 이혼(李琿)의 재위기간(1608년~1623년)인 15년 2개월 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인 <광해군일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선 제15대 임금인 광해군 시절에 이충(李沖)이라는 자가 왕이 잔치를 베풀 때 잡채를 맛있게 만들어 바쳤다고 합니다. 이 맛을 본 임금은 "이충이 채소에 다른 맛을 가미하여 그 맛이 희한하였다" 결국 이 공로로 이충은 호조판서가 되었다고 하니 잘 만든 잡채로 벼슬을 하사 받은 셈입니다.

 

광해군일기(사진출처:나무위키)

 

또 이를 풍자한 어느 무명 시인이 지은 글이라고 이런 시도 적혀 있습니다.

沙蔘閣老權初重(처음에는 사삼각로의 권세가 중하더니)

雜菜尙書勢莫當(지금은 잡채 상서의 세력을 당할 자가 없구나.)

사삼은 더덕을 말하고, 각로는 재상을 일컫는 말로 한효순이라는 이를 가리킵니다. 이 한효순은 광해군 때 이이첨과 일당이 되어 인목대비를 궁에 유폐시킨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줄에 나오는 잡채는 문자 그대로 우리가 먹는 잡채를 말합니다. 상서는 오늘날의 장관에 해당되는 판서 벼슬로 호조판서를 지낸 이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뜻을 풀이해보면 "더덕으로 밀전병을 만들어 바친 한효순의 권력이 처음에는 막강했는데, 지금은 임금에게 잡채를 만들어 바친 호조판서 이충의 권력을 당해낼 자가 없다."라는 내용으로 문장이 아닌 음식으로 권력을 취했다며 비웃는 시인 것입니다.

 

조선시대 관료(사진출처:연합뉴스)

 

<광해군일기>를 좀 더 자세히 보면 "한효순의 집에서는 사삼으로 밀병을 만들었고, 이충은 채소에 다른 맛을 가미했는데 그 맛이 희한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또 "이충은 진기한 음식을 만들 어 사사로이 궁중에도 바치곤 했는데, 임금은 식사 때마다 이충의 집에서 만들어 오는 음식을 기다렸다가 수저를 들고는 했다."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충은 광해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로, 그 총애의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잡채'였던 것입니다.

 

예전 잡채는 현재 우리가 먹는 당면으로 만든 잡채와는 그 생김새가 상당히 달랐습니다. '채소에 다른 맛을 가미했다' 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당면이 들어가는 대신 온갖 채소들로 만든 음식이었습니다. 오이, 숙주, 무, 도라지 등 각종 나물을 익혀 비벼 먹는 요리로, 익혀 먹었다는 점을 빼고는 요즘 건강 식단으로 인기 있는 야채샐러드에 더 가까웠을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영조 때의 문장가였던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이 쓴 <보만재총서>라는 책에 잡채 만드는 법이 상세히 기록돼 있는데, 여기에도 요즘 잡채의 주재료라 할 수 있는 당면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의외로 당면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이후부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1923년 10월28일자 동아일보 3면에 실린 광흥공창 제면부의 당면 광고.(사진출처:경향신문)

 

당면은 녹두, 감자, 고구마 등의 녹말을 원료로 만드는 마른국수입니다. 호면이라고도 하는데 이름을 볼 때 “호”자가 들어가니 중국에서 들어온 국수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19년 황해도 사리원에 양재하라는 조선인에 의해 황해도 사리원에 광흥공장이라는 대규모 당면 공장이 최초로 건설된 것을 보면, 당면을 삶아 만드는 최근의 잡채는 빨라야 그 무렵부터 대중적으로 퍼졌을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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